"스토리텔링의 기술"이라는 글을 포스팅하면서 거기서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러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앞으로  한 번에 한가지씩만 다루면서 계속 발전시켜 나아가기로 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사람은 말로써 이야기를 전달하고, 무용을 하는 사람은 춤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잘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에 있어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끝없는 고민이다.  일련의 컷들을 이어붙여서 하나의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현란하고 아름다운 영상들을 만들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선택한 비쥬얼이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선택인가 냉철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기술이 바로 "비쥬얼 스토리텔링(Visual Storytelling)"이라고 할 수 있다.

비쥬얼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하자면, 이야기를 시각화 하는 스토리보드부터 실질적인 화면에 적용시키기 위해 필요한 레이아웃, 카메라 워크, 편집, 조명 등등의 기술적인 부분까지 그 범위는 그야말로 넓고도 깊다.  하지만 뭐든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백 마디 말 보다는 눈으로 보며 익혀 보자.
앞의 포스팅에 예로 들었던 <토이 스토리>의 한 장면을 이번에도 사용해 보도록 하겠다.  다른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예로 들어도 좋겠지만 기왕 눈에 익혔으니 이해하기가 쉬우리라 생각해서 재탕을 하기로 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이 씬을 예로 드는 이유는 영화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인데, 캐릭터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그 심경 변화를 매우 극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자, 이제부터 우리는 방금 봤던 장면을 잠시 머릿속에서 지우고, 이야기를 처음으로 만들기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그룹에 앉아 있다고 상상을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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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상황
우디(Woody)는 장난감들의 주인인 앤디(Andy)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다른 장난감들과의 유대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나름 질서를 잡고 있는 말 그대로 '보안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던 캐릭터다.  그런데 앤디의 생일에 느닷없이 최신 장난감인 우주전사 버즈(Buzz)가 새로운 식구가 되면서 우디의 갈등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앤디가 어머니와 외출을 하는데 장난감을 하나만 가져가라고 한다.  그 소리를 우디가 듣게 된다.  누가 선택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디에게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새로운 기능으로 무장(?)한 버즈가 선택될 가능성이 더 크므로 우디는 안절부절 못한다.

□ 해야 할(필요한) 이야기
1. 외부적인 상황
- 우디가 꾀를 내어 버즈를 잠시 눈에서 안 보이게 해서 주인인 앤디가 자신을 선택하도록 만들려 한다.
-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버즈가 창 밖으로 떨어져버린다(이 사건이 전환점이 되어 이후 벌어지는 영화 내용의 출발점이 된다).
- 우디가 직접적으로 버즈를 창 밖으로 던져버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장난감은 스스로 집으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장난감의 세계에 있어서 그런 행위는 치명적인 나쁜 행동이기 때문이다.
- 우디의 목적은 일시적이며 별로 위험해 보이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2. 내부적인(심리적인) 상황
<우디>
- 우디의 행동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 계획적으로 보이면 안된다.  질투심에 눈이 멀어 우발적으로 벌이는 행동이어야 한다.
- 자신의 행동이 빚어낸 결과에 대해 후회를 하고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버즈>
- 특별 한 것은 없다.  평소처럼 정의감에 불타는 우주전사의 성격을 보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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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씬을 풀어가 보자.
이 씬에서 가장 중요한 첫번째. 우디는 어떤 방법으로 버즈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할까?
눈에 안 띄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딘가에 가려지는 것이다.  곧바로 벗어나면 안되니까 빠져나오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 곳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라진 장난감을 발견하는 가장 흔한 장소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먼저 앤디의 방을 둘러보자.
침대 밑?  거긴 스스로 기어나올 수 있으니 패스.
장난감 바구니?  거긴 앤디가 뒤져볼 것이 뻔하기 때문에 별로...
역시 가장 일반적이고 딱 들어맞는 장소는 가구 뒷쪽이다.

결정 1) 우디는 버즈를 가구 뒷쪽에 빠뜨려서 잠시 눈에 안보이게 하려고 한다.

한 가지가 해결됐다.

이제 이 씬의 캐릭터들이 배치될 기본 위치가 정해졌다.  서랍장 위를 중심으로 씬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디가 그 힌트를 얻는 과정은 어떻게 보여줄까?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디의 생각을 관객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다.  가장 편한 방법은, 우디가 고민을 하며 어슬렁거리다가 발을 헛디뎌 가구 뒷쪽으로 떨어질 뻔하는 상황이겠다.  하지만 우디의 성격상 호돌갑을 떨 것이고 그러면 버즈와 다른 장난감들이 알아차릴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명확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아깝더라도 버려야 한다.  우디의 호돌갑을 다른 장난감들이 몰랐다는 상황은 좀 억지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어슬렁거리던 우디가 우연히 가구 뒷쪽에 오래된 물건들을 발견하고 뭔가 힌트를 얻는다는 것도 가능하지만, 시각적으로 큰 재미가 없고 또한 우디의 머릿속 생각으로만 존재하는 생각을 우디의 표정 연기만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기란 좀 까다롭다(이럴 때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의 생각을 독백 형식으로 "음... 여기에 빠뜨리면 좋겠군" 하는 식으로 전달한다.  아주 게으르고 안이한 방법이다).
관객에게 우디가 힌트를 얻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뭔가 가구 뒷쪽으로 떨어지는 것을 우디가 목격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디만(!) 목격해야 한다.  역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다른 장난감끼리 장난을 치다가 그 뒷쪽으로 떨어지는 상황?  이것 역시 소란스러운 상황이 될테니까 우디만 혼자만 본다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점을 치는 장난감을 이용하기로 한다.
우디는 "과연 앤디가 나를 데려갈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점치는 장난감을 흔들어보지만 "꿈도 꾸지 마시오"라는 답변이 올라오고, 우디는 홧김에 내동댕이친다.  그것이 때구르르 굴러가서 가구 뒷쪽으로 떨어져버리는 것을 우디만(!) 목격한다.

결정 2) 우디는 점치는 장난감이 가구 뒷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서 버즈를 그곳에 떨어뜨리려고 궁리하기 시작한다.

자, 이제 두번째도 해결이 되었다.

우디가 힌트를 얻게 되는 이 과정은 이것 말고도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이야기를 만든다면 이렇게 그 자리에서 힌트를 얻기 보다는 영화의 조금 더 앞쪽에서, 이를테면 배경 설명을 하는 시작 부분에서 살짝 힌트를 던질 것이다.  앤디의 방을 설명하면서 갖가지 장난감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 한 장난감으로 하여금 가구 뒷쪽에 갇혀서 고생하는 장면을 넣음으로서 일상에서 흔히 보는 장면을 연출할 것이다.  이런 방법을 "Establishing"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사건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장면을 영화 앞쪽에서 별 것 아닌 것처럼 살짝 흘려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잘 사용하면 세련된 방법이지만 어슬프게 하면 영화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하고, 영화의 대상 연령층이 그것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이 유명한 장면을 기억하시는가!
어떻게든 잠시 기절을 시키긴 해야겠고, 망치나 방망이로 때릴 순 없고(갑자기 망치가 어디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상황이겠지만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의 정점에서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면이다.  만약에 작가나 연출자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조금 더 납득할 만한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에 약간의 Establishing을 넣어서 "저 캐릭터는 머리가  유난히 약해서 작은 충격도 치명타가 된다" 라든가, "저 양은 냄비는 보통 양은 냄비가 아니다" 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미리 이해시켰더라면(역시 말이 안되긴 하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없다고 해도 이건 해도 너무 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제부터 우디의 행동이 개시되도록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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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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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스토리텔링이라는 단어는 예전에 비해 많이 친숙해졌다.
쉽게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술" 정도가 되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의 주의를 끄는 것인데, 그러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  얘기를 잘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너무나 재미있게 한다.  반면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해도 김 빠진 싱거운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남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의 차원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데 있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만드는 기술"에 관해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각화하여 영상으로 전달하고자 할 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겉으로 보이는 영상을 통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하지만 이야기를 표면 그대로 여과없이 영상으로 만드는 것은 초등학생적인 1차원적 방법이고, 거기서는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다.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상상을 집어넣어서 보다 의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기술인데, 마치 자기를 위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도록 해야 영상에 몰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A라는 인물이 B라는 인물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할 때,
1차원적인 방법은 A라는 인물이 "나는 네가 미워!"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관객은 '아, A가 B를 싫어하는구나' 라고 받아들인다.  그게 전부다.  관객은 자신의 상상력을 집어넣을 틈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곧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싫어할 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통해서 A가 B를 싫어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굳이 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관객은 '아, A가 B를 싫어하는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관객이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자기 자신들이 평소에 하는 행동을 발견하게 된다면 인물의 감정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세련된 이야기 전달의 기술이다.


여기, 토이 스토리(Toy Story)의 한 장면을 통해서 이야기가 어떻게 세련되게 발전되었는지 보자.


기본적으로 깔린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던 우디(Woody) 앞에 새로운 최신 장난감 인형 버즈(Buzz)가 등장하고, 우디는 버즈를 시샘한다.  우디는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버즈를 어떻게든 없애려고(?) 한다.

자, 이제 그 내용을 하나의 장면으로 시각화 해보도록 하자.

이 씬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야기는,
"우디는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버즈를 어떻게든 주인의 눈에서 안보이게 하려고 한다" 라는 내용이다.  그것을 하나의 장면으로 풀어서 전달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일어날 법한 구체적인 상황이 필요하고, 우디의 질투심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행동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번째 버전이다.
감독인 존 레세터(John Lasseter)도 보여주기 챙피할 정도로 나쁘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우디의 행동이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표현적이라서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의 눈에서 안 보이게 하려고 버즈를 창 밖으로 던져버리는 행동이 너무 단순하다.  게다가 그 행위 이후의 우디의 반응을 보면 성격이 몹시 나빠보인다.  작품 전체로 보았을 때 우디는 관객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캐릭터고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너무 밉상으로 표현되었다.


두번째 버전이다.
약간 간접적인 수단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개그의 요소를 집어넣어서 우디의 나쁜 행동을 순화시켰다.


장난감이 눈에 안 보이게 되는 가장 흔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가구 뒷쪽으로 떨어지는 것인데, 그 상황이 실제로 흔하게 이어나는 일이라서 우선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디가 버즈를 직접적으로 밀어 떨어뜨리지는 않지만 그것과 진배없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역시 우디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최종 버전은 세련되게 다듬어져 있다.


우디가 직접적으로 버즈를 밀어버리지 않으면서도 버즈를 날려(?)버렸고, 그것이 사고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디가 특별히 나빠 보이지는 않는 두 가지 조건을 다 충족시켰다.  하지만 우디의 시도가 사건의 발단이기 때문에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우디가 처음부터 계획했던 결과가 아니라 연쇄 작용으로 인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가 일어났고, 그 결과에 대해 당황하는 우디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캐릭터에 공감하게 된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일이 커지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경험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수 많은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끝없는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하나의 장면을 만들었다고 해도 거기서 끝나지 말고 "이것보다 더 좋은 상황이 있을텐데..."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이야기,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기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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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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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픽사를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장난감들의 이야기 그 마지막 편이 지금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2010년8월13일 현재,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는 역대 최고의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우고 역대 픽사의 작품중에서도 최고의 흥행을 기록중이며, 그리고 그 열기는 식지 않고 계속 진행중이다.  애니메이션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서도 역대 영화의 흥행 순위 TOP10에 들어갈 기세다.

애니메이션에 있어서<토이 스토리(Toy Story)>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그런데 그 세 번째의 이야기를 전체의 엔딩으로 과감하게 선언하고 만들었으니, 팬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토이 스토리 3>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은 이구동성으로 "최고!"를 외친다.  그리고 그들의 눈시울은 하나 같이 촉촉히 젖어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영화를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라.  그것도 다 큰 어른들이 말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 어떤 감동적인 영화보다도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렸다.

과연, 그 마법의 비밀은 무엇일까?
픽사는 전통적으로 완벽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이야기가 완벽하지 않으면 결코 작업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픽사를 이끌어가는 뛰어난 시니어 그룹이 있다.  이른바 "Brain Trust"라고 불리는, 픽사의 수장 존 레세터(Jonh Lasseter), 앤드류 스탠튼(Andrew Station), 피트 닥터(Pete Docter),브래드 버드(Brad Bird), 리 언크리치(Lee Unkrich), 밥 피터슨(Bob Pertson), 브랜다 챔프맨(Branda Champman), 개리 라이드스톰(Gary Rydstrom) 등이 그 사람들이다.  모두가 픽사의 작품의 감독들이거나 진행중인 작품의 감독이다.
모든 픽사의 작품들은 이들의 머리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픽사는 <토이 스토리> 3부작의 대단원의 마지막을 위해 뜻밖에도 외부 각본가를 영입하게 된다.  바로 마이클 안트(Michael Arndt) 이다.


마이클 안트는 <리틀 미스 선샤인>이라는 영화의 각본을 썼는데, 영화는 저예산의 인디 영화였고, 영화가 완성된 2006년 당시 영화는 아직 배급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이클 안트는 다음 행보를 준비중이었는데, 그 즈음 픽사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픽사는 리 언크리치를 중심으로 다음 작품을 위해 준비중이었는데, <토이 스토리 3>는 아직 제작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픽사의 스토리 부서의 우두머리인 매리 콜맨(Mary Coleman)은 <리틀 미스 선샤인>의 제작자인 론 에르사(Ron Yerxa)에게, '장래가 촉망되는 좋은 시나리오 작가'를 추천해달라고 했고, 제작자는 마이클 안트의 시나리오를 보내주었다. 시나리오를 읽은 매리 콜맨은 마이클 안트를 당장 불러들였다.

마이클 안트는 픽사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탈고한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 제작사에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간간히 수정 사항들을 보내주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는데, 픽사의 스토리 개발 방식은 독특했다.
감독인 리 언크리치로부터 기본적인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전달 받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아가는데, 감독을 비롯한 "Brain Trust" 그룹으로부터 수없는 수정사항들의 피드백을 받게 된다.  마이클 안트는 낯선 작업 분위기에 처음에는 걱정을 했지만 그들로부터 나오는 아이디어들이 작품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부터는 감독을 신뢰하게 되었고 마음껏 실력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토이 스토리 3>가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디즈니와 픽사의 합병이 물밑 작업중이었을 때, 당시 디즈니의 우두머리인 마이클 아이즈너는 기존의 <토이 스토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제외한 채로 <토이 스토리 3>의 프리프러덕션을 디즈니에서 시작하도록 했었다(당시까지의 픽사 작품들과 캐릭터의 권리는 디즈니에 있었음).  그것은 재앙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2005년 11월에 마이클 아이즈너가 물러나고 밥 아이거가 새로운 디즈니의 우두머리가 되어 디즈니와 픽사의 합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서, 그 때까지 디즈니에서 진행중이던 <토이 스토리 3> 프로젝트는 즉시 중단되었고 픽사에서 새로운 <토이 스토리 3>를 시작할 수 있었다.

<토이 스토리 3>의 새로운 각본가로 영입된 마이클 안트와 감독인 리 언크리치가 정신없이 작업중일 무렵,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은 2006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직후 뜻밖의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성공을 거두게 되고, 마이클 안트는 2007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게 된다.

<리틀 미스 선샤인>을 보신 분들이라면 그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경험하셨으리라 믿는다.  전혀 감동적일 것 같지 않은 장면인데 가슴 한구석이 뜨뜻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  마이클 안트의 각본은 그런 세심한 터치가 장점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감동적인 장면을 보게 되면, 그것이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도록 연출이 되어있다는 것을 어지간한 사람들은 안다.  요즘 관객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관객의 머리 위에 올라서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이클 안트의 각본은 일부러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순간 울컥 하게 된다.  실로 고수중의 고수가 아닌가.

<토이 스토리 3>의 마지막 장면은, 3부작 영화의 대단원답게 감동적으로 꾸며졌다.  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우디와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들의 마음에 고스란이 감정 이입이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갑자기(!) 흘러버린다.  그것은 분명 마이클 안트의 솜씨다.

영화의 크레딧에는 각본-마이클 안트(Screenplay by Michael Arndt)라고 단독으로 이름이 올라 있지만, 마이클 안트 자신은 그저 팀의 일부였다고 말한다.  감독을 비롯한 "Brain Trust" 그룹의 놀라운 협업이야말로 <토이 스토리 3>의 성공과 픽사의 그칠줄 모르는 성공의 비결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성공하는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저 작품의 예산이 얼마인데..."라고 마치 돈이 성공의 바탕이 되어주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물론 창작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충분한 제작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스토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시간과 인력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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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 마이클 안트의 인터뷰 기사
- 그 외에 인터넷에 널린 잡다한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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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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