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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31 진실게임 이야기의 원형 <라쇼몽> 3
  2. 2010.10.01 완벽을 위한 불완전 11
  3. 2010.09.21 3 프레임짜리 컷? 13

2006년, 국내에서 뜻밖의 성공을 거둔 애니메이션 <빨간모자의 진실>. 그 속편이 제작중이라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원래는 올해 개봉 예정이었다는데 제작이 완료 되었는지, 아니면 아직 제작중인지 더 이상의 정보는 알 수가 없었다.

<Hoodwinked>

<Hoodwinked 2: Hood vs. Evil>


속편의 제작 소식을 들으니 예전에 <빨간모자의 진실>이 개봉했을 때 성공적인 관객몰이를 하며 이슈가 되었던 때가 기억났다.  흥행 성공의 일등 공신은 마케팅이었다.  당시 인기 있는 연예인과 개그맨을 맞춤 캐스팅해서 더빙을 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빨간모자의 진실>은 애니메이션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먼저, 작품의 완성도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탁월한 마케팅의 힘이었겠지만,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만 해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이 작품이 국내에서는 픽사도 넘기 힘들다는 관객 100만을 넘어서는 사건은 충격에 가까웠다.
극장가의 비수기인 4월에 개봉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인층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애니메이션 안 보기로 유명한데 어떻게 그런 까다로운 성인층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목소리의 맞춤 캐스팅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가장 큰 요소였지만 진짜 비결은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빨간모자의 진실>은 고전적인 동화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고 비틀어서 전혀 새로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탈바꿈 시켰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바로 그런 관객과 두뇌 싸움을 벌이는 스릴러인데, 비록 정통 스릴러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포스터의 카피는 관객에게 호기심을 주기엔 충분했다.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서로 엇갈리는 진술을 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따라서 그들만의 버전으로 영상이 펼쳐진다는데 그 재미가 있다.  상황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의 성격까지도 완전히 달라지는데, 말하자면 하나의 캐릭터가 각각의 진술 내용에 따라서 다른 성격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재미에 더해서 관객들은 조각그림을 맞추듯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두뇌게임을 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일종의 진실게임인 샘이다.

엇갈리는 진술에 따라서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의 원조가 바로 <라쇼몽>이라는 영화인데, <빨간모자의 진실>을 이야기 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작품이다.

<빨간모자의 진실>이 그 조악한 완성도와는 별개로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은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영화 <라쇼몽>의 영화 문법을 차용했다는 점이었다. 영화를 조금 안다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영화의 명성을 등에 업었으니 아무리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떨어져도 이 작품을 평가할 때 무조건 나쁘다고 욕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 그럼 도대체 그 <라쇼몽>은 어떤 영화일까?
영화 <라쇼몽>은 일본이 배출한 명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신호탄이 된 작품이다.  일본 개봉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는 구로사와 감독 자신도 이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정도였지만(이탈리아의 영화를 일본에 소개하던 영화인의 소개로 출품되었음) 동양적인 신비함에 철학적인 주제를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가는 독특한 이 영화에 유럽의 영화인들은 신세계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시나리오에 관련된 책을 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터이지만 실제로 감상을 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Wish List에 담아놓고 구입하지 못하는 물건처럼 언젠가는 꼭 봐야지 하면서 적어놓은 영화 목록에 이 영화도 끼어 있으리라 짐작을 해 보면서, 개봉 영화들 따라잡기도 힘든 애니메이션인들을 위해 영화 <라쇼몽>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글이 스포일러가 될 우려는 없다. 이 영화속 이야기에서는 누가 진범이냐 하는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영화의 오프닝을 압도하는 폐허가 된 건물의 실루엣

영화는, 폐허가 된 건물의 실루엣을 배경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건물의 현판에는 "羅生門(라쇼몽)"이라고 쓰여 있다.
한 걸인이 비를 피해 뛰어 들어가는데, 그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승려와 나무꾼을 만난다.  그 두 사람은 무엇에 홀린 것처럼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라고 혼잣말을 반복하고 있었고,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는 걸인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면서 영화의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된다. 

이야기속의 이야기

나무꾼의 목격담으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기 시작된다.

"제가 처음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나무를 하러 깊은 숲에 들어갔던 나무꾼이 한 남자의 시체를 발견하고 관아에 신고를 한다.  그리고 그 남자의 주검에 대한 책임을 따지기 위해 간소한 야외 법정이 마련된다(법정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초라한데, 영화 속에서는 진술자들의 모습만 화면에 비친다) .  처음 남자의 시체를 목격한 나무꾼, 길을 가다가 남자와 그 아내를 목격했던 승려가 간단히 진술을 하고, 그 다음으로 죽은 남자의 아내, 그리고  그 남자를 죽였다고 자백하는 산적이 등장하여 각각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이 재구성 된다.

"사내와 여자를 길에서 마주친 사실이 있습니다"

"내가 그 남자를 죽였다!"

자신이 사내를 죽였다고 호기롭게 외치는 산적의 플래시백으로 영화는 본격적인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이야기속의 이야기속의 이야기

■ 산적의 증언
숲에서 낮잠을 자던 산적은 길을 지나가던 두 사람과 마주치는데, 말을 탄 여인에게 넋이 나가서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선다.  산적은 남자를 깊은 숲속으로 유인해서 밧줄로 묶어버리고 그 남자가 보는 앞에서 여인을 겁탈한다.

"둘 중 살아남는 사람을 따르겠어요"

자리를 뜨려는 산적에게 여인은 뜻밖의 말을 한다.  두 남자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남편과 산적이 결투를 벌여 살아남는 쪽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훌륭한 결투였고, 내가 이겼다"

그래서 두 사람은 치열한 결투를 벌이고 결국 남자는 산적에게 목숨을 잃고 만다.  여기까지가 산적의 진술이다.  자신이 죽였다고 하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모든 사건의 전모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서 죽은 사내의 여인이 진술을 한다.

■ 여인의 증언
남편을 묶어놓고 자신을 겁탈한 것 까지는 산적의 말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남편을 죽인 것은 자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인의 플래시백. 

"제발,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요"

여인은, 산적에게 겁탈 당한 후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차갑고 증오에 가득한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성을 잃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남편을 단도로 찔러 죽이고 말았다고 증언한다.  등장인물은 같지만 산적의 증언 속에 등장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등장인물의 성격도 판이하다.  이런 스토리텔링을 처음 접했던 관객의 당황스러움을 과연 짐작할 수 있을까. 

"들으면 들을수록 더 헷갈리는군"


■ 죽은 사내의 증언
그리고 이어지는 진술자는 놀랍게도 죽은 사내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고?  일본에도 우리나라처럼 죽은 혼령을 불러내는 무당이 있는 모양이다.  죽은 사내의 혼령을 불러낸 무당의 입을 통해서 세 번째의 증언이 이어진다.

"나는 지금 암흑 속에 있다"

죽은 사내의 진술은 앞의 두 증언과는 또 판이하게 다르다.  산적은 아내를 겁탈하고 나서 뻔뻔스럽게도 여인을 위로하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바에야 자기의 아내가 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여인은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말하면서 그 대신, 그냥 갈 수 없으니 자기 남편을 죽여 달라고 한다.

"저 사람을 죽여주세요"

하지만 여인의 뜻밖의 반응에 당황한 산적은 갑자기 마음이 돌변하여 여인과 사내를 버리고 떠난다.  사내는 여인의 비열함에 좌절하여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죽은 혼령의 증언이라니... 죽은 사람이 뭐가 아쉬운 게 있어서 거짓말을 하겠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죽은 사내의 증언이야말로 사건의 전모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 이르다.

영화가 마무리되는가 싶은 순간, 갑자기 이야기는 폭우가 쏟아지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갑자기 나무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친다
.

"거짓말이야. 사내는 장도에 찔려 죽었어"

"자네가 다 봤군"

사건의 현장에 또 다른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나무꾼이다.  나무꾼은 사내의 주검을 발견하기 이전에 이미 현장에 도착해서 모든 사건을 목격했던 것이다.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 싫어서 사내의 시체만 발견했다고 증언했을 뿐이었다. 

■ 나무꾼의 목격담
나무꾼이 숲에 도착했을 때는 쓰러져 울고 있는 여인 옆에서 산적이 용서를 빌고 있었다.  산적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될 터이니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무릎을 꿇고 여인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여인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한다.

"여인인 내가 어떻게 결정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러더니, 묶여 있는 남편의 밧줄을 풀어주면서 두 사람의 결투를 부추긴다.  하지만 뜻밖에도 사내는 이런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 가치가 없다면서 산적에게 여인을 데려가라고 한다.  그러자 산적도 여인에 대해 흥미를 잃고 만다. 
졸지에 두 남자에게서 버림받을 처지가 되어버린 여인은 태도가 돌변해서 두 남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결국 결투를 하게 만든다. 
나무꾼이 목격한 두 남자의 대결은 결코 용맹스럽지 않았다.  산적이 증언했던 장면에서의 치열한 대결과는 거리가 먼,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뒹굴기만 하는 겁쟁이들의 볼품없는 싸움에 불과했고 위기에 몰린 사내는 목숨을 구걸하기까지 했다.  사내는 산적에게 목숨을 잃고 그 틈에 여인은 달아나버리고 만다.  이것이 나무꾼의 목격담이다.

나무꾼의 목격담은 정황으로 보아 가장 앞뒤가 맞는 것 같다.  게다가 사건 당사자들과는 아무런 이익 관계가 없는 제3자이기 때문에 나무꾼의 증언이야말로 진짜 진실일 것이었다.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이제 영화는 마무리 되어간다.

"나는 당신 말도 못 믿겠소"

이야기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모든 사람의 증언과 목격담을 들은 걸인은 마지막 나무꾼의 목격담도 똑같은 거짓이라고 일갈한다.  어차피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없다면서.
바로 그때, 건물 구석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아이를 버리고 간 것이다.  제일 먼저 달려간 걸인이 아이를 감싸고 있는 옷가지들을 벗겨 가져가려고 하자 나무꾼이 말린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소?"

"그러는 당신은?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말하지 않은 게 있잖아?"

그렇다.  나무꾼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여인이 들고 있던 단도에 관한 이야기다.  값이 나가는 단도를 나무꾼이 빼돌리고 그 이야기는 쏙 빼버린 것이다.  결국 나무꾼의 목격담 역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고 절망에 빠진 스님은 깊은 신음을 토한다.  그런데 나무꾼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한다.  깜짝 놀란 스님은 어떻게 당신을 믿겠느냐며 거절하는데, 나무꾼은 이미 집에 여섯의 아이를 힘들게 키우고 있기 때문에 하나를 더 키운다고 해서 특별히 힘들 건 없다면서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 한다.  순간 스님은 잠시나마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져버린 것을 크게 뉘우치고 아이를 나무꾼에게 건네고, 나무꾼은 아이를 품에 안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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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일반적인 법정영화나 탐정영화에서는 서로 다른 진술 내용은 단지 조각 그림일 뿐이다.  각자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빼고 유리한 내용만 말하기 때문에 그런 엇갈린 진술들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만 취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면 사건의 진실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에서 진술 내용은 대부분 말로만 전달될 뿐이고 간혹 영상으로 펼쳐진다고 해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목격한 장면이 나올 뿐이지 하나의 상황을 다르게 표현하지는 않는다(적어도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라쇼몽>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당사자들의 진술 내용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재구성되어 화면상에 펼쳐진다는 것에 있다.  말로 들을 때는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막상 등장인물들에 의해 새로운 내용이 펼쳐지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는 순간에는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식으로 "방금 전의 이야기가 진실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나중에는 어떤 것이 진실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열린 결말에 대한 조심성

요즘에는 이런 이야기 방식이 시트콤이나 가벼운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해졌지만 진지한 이야기 도구로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관객들이 그런 열린 결말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깔끔한 결말을 선호하기 때문에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거야?", "이게 뭐야?" 라는 반응이 나오면 그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기 힘들다.  때문에 철학적인 고민을 던질 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구조는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빨간모자의 진실>은 아주 똑똑했다.  <라쇼몽>의 이야기 구조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만 취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야기의 마무리는 전형적인 가족 오락물에 맞게 매듭지었다.  관객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고 지적 호기심만을 만족시킨 점은 높이 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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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원형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지은 <일리아드><오디세이> 이후로 새로운 이야기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작품들은 모든 이야기 구조의 원형으로 불린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그 작품들의 수많은 변주에 불과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로 매년 수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자세히 파헤쳐 보면 그 영화들의 이야기 구조는 소수 특별한 영화의 변주들이다.  다만 얼마나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새로 구성하느냐 하는 문제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그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를 가지고 깜짝 놀랄 만한 작품들이 세상에 나온다.
예를 들면, <스타워즈>는 SF 장르의 신기원을 이룩했고, 최근에는 <매트릭스>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였다.  <식스 센스>는 놀라운 반전을 숨겨놓고 심령 공포물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었고, <유주얼 서스펙트> 역시 반전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영화였다.  <슈렉>은 동화 비틀기의 원형이다.  그런 식으로 세상에 나와 그 이후 수많은 영화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영화들을 나는 "영화의 원형"이라고 부르고 싶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만큼 영화는 아이디어의 보고라는 말이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살짝 가져다 쓸 만한 (검증된) 훌륭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의 원형은 충분히 있다.  굳이 호메로스의 작품을 연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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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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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영화 <스타트렉 : 더 비기닝(Star Trek)>을 보면서 영화 촬영 기법의 새로운 흐름을 목격했다.  특별히 기법이라고까지 할 것도 없는데, 공들여 만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바로 "렌즈 플레어(Lens Flares)" 현상이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사진이나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인데 내가 놀란 것은, 촬영 감독이나 조명 감독들이 기피했던 이런 현상을 자연스러움을 넘어 과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거의 모든 컷에서 빛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간섭한다.  위에 보이는 컷들은 애교처럼 보일 정도로 어떤 컷은 화면의 절반 이상이 날아갈 정도로 하얗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처음에는 좀 거슬렸던 빛들이 조금 지나자 내가 미래 세계에 함께 하고 있다는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렌즈 플레어 현상은 광원이 렌즈를 통과하면서 생기는 굴절과 반사의 복합적인 현상인데, 요즘에는 특수한 목적에 의해서 일부러 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영화 촬영에 있어서는 기피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포토샵의 Lens Flare 효과

관객들이 영화 속 이야기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필요하다.  그런데 화면에 느닷없이 렌즈 플레어 현상이 나타나면 관객들은 순간적으로 "아, 이것은 카메라로 촬영한 화면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야기에서 튕겨져 나오게 된다.  내가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렌즈를 통해서 본다는 느낌 때문에 갑자기 거리감이 생기고 영화에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 제작자들의 오래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상 기기의 발달로 인해서 휴대용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고 그에 따라 개인들이 만들어낸 영상물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특히 각종 사건 사고 현장에서 촬영된, 화질은 조악하지만 현장감 넘치는 화면들을 TV와 인터넷을 통해서 빈번하게 접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화면 흔들림이나 과도한 빛의 노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화에서도 그런 관객들의 심리를 역이용해서 리얼리티를 살리는데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이제는 관객들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깔끔한 화면보다는 조금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화면에서 더욱 현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래는 영화의 일부분이다.  빛의 향연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SF라는 비현실적인 이야기.  어차피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누군가 정말로 현장에서 카메라에 담아 온 것처럼 현장감 넘치는 화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영화 속 이야기의 리얼리티에 빠져들게 된다.  아마도 감독이 의도한 것은 바로 그 점일 것이다.

과거에는 기피했던 영화 제작상의 단점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장점으로 부각된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런 예는 애니메이션에도 있다.
픽사의 2008년 작품 <월-E(WALL-E)>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감독인 앤드류 스탠튼(Andrew Stanton)은 작품의 비쥬얼을 실사처럼 보이기를 원해서 조명과 렌즈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스타워즈(Star Wars)>,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2001:Space Odyssey)>, <클로스 인카운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같은 고전 SF 영화의 클래식한 느낌을 담아내고 싶어 했는데, 이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는 와이드 스크린 상영을 위해서 아나모픽 렌즈(Anamorphic Lens)를 이용해 촬영했다는 것이다.
아나모픽은, 폭이 좁은 필름에 와이드 스크린 화면을 담아내기 위해 특수한 렌즈를 통해서 이미지를 광학적으로 압축하는 기술인데, 픽셀로 저장되는 디지털 이미지와는 달리 광학적으로 압축되어 필름에 담겨진 이미지는 나중에 반대의 과정으로 렌즈를 통과시켜 원래의 크기로 폭을 넓혀도 이미지의 손상이 거의 없는 특성을 지닌다.

아나모픽 렌즈를 이용해 촬영을 하면 넓은 화면을 폭이 좁은 필름에 담아낼 수 있다


아나모픽 렌즈


그런데, 아나모픽 렌즈를 이용해서 촬영하면 특이한 현상이 하나 생기는데, 바로 초점에서 벗어난 뒤쪽의 피사체가 수직으로 길게 늘어나는 현상이다.

초점을 벗어난 배경의 불빛이 상하로 길게 타원형으로 왜곡되었다


영화 제작자의 입장에는 이미지가 왜곡되는 이 문제를 너무나 해결하고 싶어 했지만, <월-E>에서는 고전적인 영화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일부러 이 현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원래 CG 카메라에서는 생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수정 등의 기술적인 수고가 필요했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고생은 헛되지 않아서, 그 결과물은 마치 진짜 현장에서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 온 것처럼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초점을 벗어난 배경 이미지가 왜곡되는 아나모픽 렌즈의 특성을 그대로 살렸다


기술이 발달한 만큼 어쩌면 더 세련된 화면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린 낡은 기술까지 (힘들게) 되살리는 수고를 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고생한 만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그 차이가 미미하다면 굳이 힘든 길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미미한 차이가 어쩌면 내가 원하는 길로 가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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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E>의 아나모픽 렌즈에 대한 내용은 DVD의 서플먼트 디스크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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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보완 내용

1. <월-E>에서 사용된 아나모픽 렌즈의 이미지 왜곡 현상은 순전히 프로그램 상에서 구현된 것입니다.

2. 영화 <스타트렉:더 비기닝>에서의 렌즈 플레어 효과는 철저한 감독의 의도였고, 실제로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 렌즈를 향해서 측면에서 빛을 쏘아서 효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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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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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포스팅 했던 "몽타주 시퀀스"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영화의 편집 기술은 시대에 따라서 발전을 거듭하면서 계속 새로운 기법이 시도되고 있다.  예전에는 필름을 자르고 붙이는 까다로운 방법으로 편집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촬영된 소스부터 디지털화 되어 컷을 자르고 붙이는 과정이 너무나도 손쉬워지면서 편집의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20 세기가 저물어 가던 1999년.  한 편의 영화가 세상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하였으니 바로 <매트릭스(The Matrix)>다.  나 역시 종로의 서울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세상이 달리 보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야말로 심봉사가 눈을 번쩍 뜬 기분이었다.

<매트릭스> 하면 총알을 피하는 그 유명한 "Bullet-Time" 시퀀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야말로 영화 편집의 기술을 한꺼번에 몇 단계 진보시킨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매트릭스>가 영상 매체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편집은 새로운 유행을 낳았다.  특히, 하나의 장면, 하나의 동작을 여러 각도로 촬영해서 짧은 프래임들로 재구성하는 감각적인 스타일의 편집은 영화가 나온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유행이 식을 줄을 모른다.
다음 장면을 보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점프-발차기-착지의 동작이 4개의 다른 컷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적인 속도와 슬로우 모션이 리듬감 있게 편집되어 하나의 동작을 구성하는데, 이런 편집에서 관객들은 컷의 숫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화려하고 짜릿한 하나의 발차기 동작으로만 뇌리에 남을 뿐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도 과연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물론 총알을 피하는 장면은 애니메이션 포트폴리오에서 아주 지겹도록 보아야만 했다.  나중에는 그런 비슷한 장면만 나와도 짜증부터 날 지경이었다.  그런 것 말고, 짧고 빠른 컷을 감각적으로 재배치해서 새로운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기법을 애니메이션에서도 시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놀랍게도 2004년, 픽사의 6번째 장편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에서 나는 보고야 말았다.


컷이 몇 개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그리고 짧은 컷이 몇 프레임짜리인지 알면 두 번 놀랄 것이다.  중간 부분만 잘라서 느린 속도로 만들어 봤다.


2초 남짓한 위 장면은 총 7개의 컷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짧은 컷은 3 프레임이고, 가장 긴 컷도 8 프레임밖에는 안 된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애니메이션 감독이 3 프레임짜리 컷을 사용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  3 프레임이면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빡 하는 순간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3 프레임짜리 컷이라고 해도 다른 컷과 똑 같은 공을 들여야 하는데...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위에서 예를 든 <매트릭스>와 <인크레더블>의 편집 방법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매트릭스>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가상의 공간에서 시간의 개념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컨셉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하나의 동작도 컷에 따라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유연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반면에 <인크레더블>의 경우에는 빠르게 달리는 캐릭터의 속도에 맞춰서 편집 역시 빠르고 톡톡 튄다.
<매트릭스>의 편집이 물 흐르듯 매끄러운 동작을 중심축으로 해서 캐릭터의 능력을 돋보이게 했다면, <인크레더블>의 편집은 컷과 컷을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캐릭터의 응축된 에너지를 표현했다.

여기서 잠깐, 먼저 다루었던 몽타주 기법을 대입해 보자.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기법도 컷과 컷을 충돌시켜 각 각의 컷이 가진 이미지가 아닌 제 3의 새로운 느낌을 만든다는 의미에서는 비슷한 것 같지만,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는 하나의 컷을 여러개로 조각내어 다른 컷들 사이 사이에 배치함으로서 컷의 충돌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위에서 예를 든 장면들은 하나의 동작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컷들로 재배치하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게 몽타주 이론은 편집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계속 진화해 가고 있다.

영상 언어에 대한 이해와 기초만 탄탄하다면 애니메이션으로도 새로운 유행을 만들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 영화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애니메이션에서 배우는 그런 유행을...


참고로, <인크레더블>의 브레드 버드 감독은 탐 크루즈 주연의 영화 <미션 임파서블 4>의 감독으로 확정되어 있다(2011년 12월 개봉 예정).  놀라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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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보완

몽타주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의 오뎃사 계단 장면을 이야기 했는데, 도대체 어떤 장면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해당 장면을 추가한다.  무성영화 시대의 영화라 여러 면에서 촌스러운 느낌이 나지만 적어도 편집에 있어서는 요즘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당시로서는 하나의 컷을 여러개로 조각내어 다른 컷들 사이에 배치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라울 뿐 아니라 그 시각적 결과물이 던져주는 느낌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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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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