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국내에서 뜻밖의 성공을 거둔 애니메이션 <빨간모자의 진실>. 그 속편이 제작중이라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원래는 올해 개봉 예정이었다는데 제작이 완료 되었는지, 아니면 아직 제작중인지 더 이상의 정보는 알 수가 없었다.
<Hoodwinked> <Hoodwinked 2: Hood vs. Evil>
속편의 제작 소식을 들으니 예전에 <빨간모자의 진실>이 개봉했을 때 성공적인 관객몰이를 하며 이슈가 되었던 때가 기억났다. 흥행 성공의 일등 공신은 마케팅이었다. 당시 인기 있는 연예인과 개그맨을 맞춤 캐스팅해서 더빙을 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극장가의 비수기인 4월에 개봉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인층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애니메이션 안 보기로 유명한데 어떻게 그런 까다로운 성인층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목소리의 맞춤 캐스팅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가장 큰 요소였지만 진짜 비결은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빨간모자의 진실>은 고전적인 동화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고 비틀어서 전혀 새로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탈바꿈 시켰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바로 그런 관객과 두뇌 싸움을 벌이는 스릴러인데, 비록 정통 스릴러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포스터의 카피는 관객에게 호기심을 주기엔 충분했다.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서로 엇갈리는 진술을 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따라서 그들만의 버전으로 영상이 펼쳐진다는데 그 재미가 있다. 상황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의 성격까지도 완전히 달라지는데, 말하자면 하나의 캐릭터가 각각의 진술 내용에 따라서 다른 성격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재미에 더해서 관객들은 조각그림을 맞추듯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두뇌게임을 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일종의 진실게임인 샘이다.
<빨간모자의 진실>이 그 조악한 완성도와는 별개로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은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영화 <라쇼몽>의 영화 문법을 차용했다는 점이었다. 영화를 조금 안다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영화의 명성을 등에 업었으니 아무리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떨어져도 이 작품을 평가할 때 무조건 나쁘다고 욕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 그럼 도대체 그 <라쇼몽>은 어떤 영화일까?
영화 <라쇼몽>은 일본이 배출한 명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신호탄이 된 작품이다. 일본 개봉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는 구로사와 감독 자신도 이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정도였지만(이탈리아의 영화를 일본에 소개하던 영화인의 소개로 출품되었음) 동양적인 신비함에 철학적인 주제를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가는 독특한 이 영화에 유럽의 영화인들은 신세계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시나리오에 관련된 책을 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터이지만 실제로 감상을 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Wish List에 담아놓고 구입하지 못하는 물건처럼 언젠가는 꼭 봐야지 하면서 적어놓은 영화 목록에 이 영화도 끼어 있으리라 짐작을 해 보면서, 개봉 영화들 따라잡기도 힘든 애니메이션인들을 위해 영화 <라쇼몽>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글이 스포일러가 될 우려는 없다. 이 영화속 이야기에서는 누가 진범이냐 하는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영화의 오프닝을 압도하는 폐허가 된 건물의 실루엣
이야기속의 이야기
나무꾼의 목격담으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기 시작된다.
"제가 처음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사내와 여자를 길에서 마주친 사실이 있습니다"
"내가 그 남자를 죽였다!"
이야기속의 이야기속의 이야기
■ 산적의 증언
숲에서 낮잠을 자던 산적은 길을 지나가던 두 사람과 마주치는데, 말을 탄 여인에게 넋이 나가서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선다. 산적은 남자를 깊은 숲속으로 유인해서 밧줄로 묶어버리고 그 남자가 보는 앞에서 여인을 겁탈한다.
"둘 중 살아남는 사람을 따르겠어요"
"훌륭한 결투였고, 내가 이겼다"
■ 여인의 증언
남편을 묶어놓고 자신을 겁탈한 것 까지는 산적의 말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남편을 죽인 것은 자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인의 플래시백.
"제발,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요"
"들으면 들을수록 더 헷갈리는군"
■ 죽은 사내의 증언
그리고 이어지는 진술자는 놀랍게도 죽은 사내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고? 일본에도 우리나라처럼 죽은 혼령을 불러내는 무당이 있는 모양이다. 죽은 사내의 혼령을 불러낸 무당의 입을 통해서 세 번째의 증언이 이어진다.
"나는 지금 암흑 속에 있다"
"저 사람을 죽여주세요"
영화가 마무리되는가 싶은 순간, 갑자기 이야기는 폭우가 쏟아지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갑자기 나무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친다.
"거짓말이야. 사내는 장도에 찔려 죽었어"
"자네가 다 봤군"
■ 나무꾼의 목격담
나무꾼이 숲에 도착했을 때는 쓰러져 울고 있는 여인 옆에서 산적이 용서를 빌고 있었다. 산적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될 터이니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무릎을 꿇고 여인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여인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한다.
"여인인 내가 어떻게 결정을 할 수 있겠어요"
나무꾼의 목격담은 정황으로 보아 가장 앞뒤가 맞는 것 같다. 게다가 사건 당사자들과는 아무런 이익 관계가 없는 제3자이기 때문에 나무꾼의 증언이야말로 진짜 진실일 것이었다.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나는 당신 말도 못 믿겠소"
바로 그때, 건물 구석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아이를 버리고 간 것이다. 제일 먼저 달려간 걸인이 아이를 감싸고 있는 옷가지들을 벗겨 가져가려고 하자 나무꾼이 말린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소?"
"그러는 당신은?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말하지 않은 게 있잖아?"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고 절망에 빠진 스님은 깊은 신음을 토한다. 그런데 나무꾼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한다. 깜짝 놀란 스님은 어떻게 당신을 믿겠느냐며 거절하는데, 나무꾼은 이미 집에 여섯의 아이를 힘들게 키우고 있기 때문에 하나를 더 키운다고 해서 특별히 힘들 건 없다면서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 한다. 순간 스님은 잠시나마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져버린 것을 크게 뉘우치고 아이를 나무꾼에게 건네고, 나무꾼은 아이를 품에 안고 떠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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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당사자들의 진술 내용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재구성되어 화면상에 펼쳐진다는 것에 있다. 말로 들을 때는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막상 등장인물들에 의해 새로운 내용이 펼쳐지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는 순간에는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식으로 "방금 전의 이야기가 진실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나중에는 어떤 것이 진실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열린 결말에 대한 조심성
요즘에는 이런 이야기 방식이 시트콤이나 가벼운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해졌지만 진지한 이야기 도구로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관객들이 그런 열린 결말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깔끔한 결말을 선호하기 때문에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거야?", "이게 뭐야?" 라는 반응이 나오면 그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기 힘들다. 때문에 철학적인 고민을 던질 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구조는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빨간모자의 진실>은 아주 똑똑했다. <라쇼몽>의 이야기 구조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만 취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야기의 마무리는 전형적인 가족 오락물에 맞게 매듭지었다. 관객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고 지적 호기심만을 만족시킨 점은 높이 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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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원형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지은 <일리아드><오디세이> 이후로 새로운 이야기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작품들은 모든 이야기 구조의 원형으로 불린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그 작품들의 수많은 변주에 불과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로 매년 수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자세히 파헤쳐 보면 그 영화들의 이야기 구조는 소수 특별한 영화의 변주들이다. 다만 얼마나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새로 구성하느냐 하는 문제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그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를 가지고 깜짝 놀랄 만한 작품들이 세상에 나온다.
예를 들면, <스타워즈>는 SF 장르의 신기원을 이룩했고, 최근에는 <매트릭스>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였다. <식스 센스>는 놀라운 반전을 숨겨놓고 심령 공포물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었고, <유주얼 서스펙트> 역시 반전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영화였다. <슈렉>은 동화 비틀기의 원형이다. 그런 식으로 세상에 나와 그 이후 수많은 영화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영화들을 나는 "영화의 원형"이라고 부르고 싶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만큼 영화는 아이디어의 보고라는 말이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살짝 가져다 쓸 만한 (검증된) 훌륭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의 원형은 충분히 있다. 굳이 호메로스의 작품을 연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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