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애니메이션 포럼 2011'은 11월29일~11월30일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 행사이며 우리나라를 포함, 아시아 각 지역에서 선발된 우수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세계의 메이저 키즈 채널 관계자를 대상으로, 1차적으로 현장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피칭을 하고 2차적으로 비지니스 미팅을 통해 실질적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아시아 애니메이션 포럼 : 투자 피칭 & 세미나

부대 행사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나는 첫날에 있었던 현장 피칭을 보고 싶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자국이나 국외의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이미 메인프로젝트를 한창 진행 중이거나 또는 프리프로덕션을 진행 중인 작품이기 때문에 상품성(또는 작품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고 해도 좋겠다. 그래서 최근의 애니메이션 업계의 흐름을 가늠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했다.


■ 패널 인적사항

현장 피칭은, 각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회사 관계자가 작품에 관해 7~10분 정도의 피칭을 마치면 단상에 있는 5명의 패널이 그에 대한 평가와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패널 5명의 피드백 내용이었다. 과연 그들의 피드백이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패널들의 소속과 직책을 간단히 소개해 본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충분히 들어 볼 가치가 있는 내용들이었다. (사진 좌측부터)
 

Matt Porter

: Head of Animation Production - Zodiak Media Group, The Foundation TV Productions

(영국 최대 미디어 그룹인 조디악 미디어 그룹의 The Poundation TV Production의 애니메이션 프로덕션 총괄)
 

Leah Wolfson

: Production Executive - YTV & Treehouse, Corus Entertainment

(캐나다의 Corus Entertainment의 미취학 아동 대상 채널인 Treehouse의 제작부장)
 

Myles Hobbs

: KidScreen, Associate Publisher

(미국 애니메이션지 '키즈스크린' 부편집장)
 

Craig McGillivray

: DHX Media, Territory Manager

(캐나다의 TV 프로그램 배급사 DHX Media 소속)
 

Dominique Poussier

: (Fomer) TF1, Cosultant

(전직 프랑스 국영 TV TF1의 애니메이션 총책임자. 뽀로로를 유럽에 소개시킨 사람)

 

■ 피칭 작품

피칭은 한국 작품 5개, 말레이시아가 2개, 태국 2개 해서 총 9개 작품이었다.

한국 작품은 "헬로 키오카"(골디락스), "슈퍼 프로포즈"(디지아트), "똑딱하우스"(퍼니플럭스), "아기 고릴라 둥둥"(써니싸이드), "꼬미기차 추추"(스튜디오 비) 이렇게 다섯 작품이었다.
국내 작품들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업계에서는 어느 정도는 가능성을 인정받아서 오래전 부터 제작이 진행중인 작품이 대부분이며 행사의 목적이 초기 투자 유치가 아니라 사업 확장을 위한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레이지아와 태국의 작품들 역시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자국에서는 밀어주고 있는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작품의 수준이나 진행 상황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해외 피칭작품들

해외의 작품은 말레이시아의 "Go, Elements!"(Asis Media Animation), "Origanimals"(Giggle Garage), 그리고 태국의 "Zoovivor"(Lunchbox Studio), "Orin & Jinna"(Right Content) 이상 4 작품이었다.


이제는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해외 진출을 목표로 삼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애니메이션은 표현 방식의 특성상 언어나 인종을 초월해서 공감을 얻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기왕이면 '글로벌'하게 만들어서 전 세계를 시장으로 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 관객들의 마음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마당에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춘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피칭작들을 보면서 그런 고민은 더했다.

위 작품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아직 초기 단계의 작품들이기 때문에 완성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국의 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을 노크하는 제작자들의 열정과 고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탓인지 패널들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꼬집어주는 피드백을 들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내가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1. 대상 연령층에 대한 이해
이번 피칭작들의 타켓, 즉 대상 연령층은 모두가 Pre-School 이었다. 우리말로 하면 미취학 아동(취학전 아동이라는 말이 더 맞다)인데, 같은 미취학 아동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와 외국 아이들의 수준(?)은 너무 다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한글은 당연히 익히고 영어까지도 어느 정도는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엔 취학 전 아동에 대한 선행 학습은 상당히 조심스러워 한다.
세계 시장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외국 아이들의 수준도 생각을 해야 하는데, 당연히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 뜻밖의 반응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퍼니플럭스가 제작중인 "똑딱하우스"의 경우에 아이들에게 올바른 시간 관념을 갖도록 해주는 내용인데, 캐나다의 아동전문채널 "Treehouse" 제작부장인 Leah Wolfson은 북미 지역의 취학 전 아동들을 예로 들면서 그 또래의 아이들은 아직 시간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스토리상에서 시간의 개념을 주의 깊게 풀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그 의견에 다른 패널들이 모두 공감을 했다. 게다가 시계를 '읽는' 것과 시간을 '이해하는' 것은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닌가! 나 개인적으로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아차! 싶었다. 물론 제작사 측에서는 제작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예로, 써니싸이드의 "아기고릴라 둥둥"의 경우에는 비주얼은 아동의 눈높이에 맞지만 내용에 표현된 코미디 요소가 성인 취향이라서 타켓이 애매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2. 무슨 이야기를 보여줄 것인가
거의 모든 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피드백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정확하지가 않다"라는 의견이었다. 거의 대부분 작품이 1~2분 가량의 파일럿 동영상을 상영했는데, 작품의 분위기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작품의 제작 의도를 본편에서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경우 그런 일이 생긴다.  스토리텔링의 문제인데, 기획 단계에서 아무리 좋은 제작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그 작품은 매력을 잃는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What's the story about?)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매력 요소는 무엇인가?(What is the hook?)
이 두 가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사족>
■ 진정 아이들을 위하고 있나?

"지금 내가 만드는 이 작품이 정말 내 아이들을 위하는 것일까?"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 아이가 더 똑똑해져서 공부도 잘 하고, 사회성을 길러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고... 부모라면 누구나 바라는 점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딜레마에 빠진다.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은 그 최종 소비자가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 구매자는 부모들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눈을 충족시켜야 할 것인가? 즉 아이들이 볼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구매 결정권은 부모에게 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기획자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할 것 같은 작품" 을 생각할 것이다. 여간 위험한 생각이 아니다. 그나마 아이가 있는 사람은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을 기획할테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아이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뭔가 빠뜨리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바로 "아이들의 생각(의견)"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생각했지, 정말 아이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있을텐데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별로 없다. 부모가 보여주는 대로 보고, 쥐어주는 대로 가져야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떼를 쓸 수는 있다(하지만 그랬다가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할 가능성만 높아진다).
반면에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자극적인 것을 원하기 때문에 판단력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부모가 중간에서 필터링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 보다 나은 삶을 살기 바라고, 그래서 그 길로 인도하려는 부모의 마음은 고귀하다. 다만, 한창 감수성을 키워야 할 시기에 모든 것을 교육과 학습의 길로만 데리고 가려는 욕심을 조금 줄이자는 것 뿐이다. "교육을 위한 놀이"가 아닌 "놀이 만을 위한 놀이"의 시간이 있어도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에듀테인먼트"라는 이름만 살아남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 업계에 몸 담고 있는 나부터 좀 신나고 재미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말이다.

----
아시아애니메이션 포럼 
http://www.asiaanimation.org 

---- 
*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각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글의 일부나 전체를 스크랩 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되도록이면 링크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김종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