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저는 지난 6월부터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터로 취업했다는 이야기가 뭐 새로울 것이 있을까요.  하지만 저 스스로는 새롭습니다.

 

2000년 12월에 애니메이션 회사에 애니메이터로 처음 입사해서 미친듯이 캐릭터 애니메이션에만 빠져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제일 재밌는 줄 알았는데, 기획하고 연출하는 일은 더 재미가 있더군요.  스토리를 개발하고 그것을 스토리보드-콘티로 시각화 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재미있었지만 그것을 결과물로 만드는 애니메이팅 작업에서도 결코 손을 놓은적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손목에 무리가 와서 진짜 엄청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미치겠더군요.  얼른 작업을 하고는 싶은데 마우스 클릭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손목이 아파서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그때 트라스트와 캐토톱의 효과를 좀 봤다는...←특정 상품 광고는 아님).  여러분, 아무리 애니메이션이 좋아도 죽도록 하지는 맙시다.^^

 

그러다가 2006년에 회사를 옮기면서 어줍잖게 감독이란 직책을 달고 연출에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애니메이팅 작업에서는 손을 땔 수밖에 없었지요.  2년 정도에 걸쳐서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고나니 너무나 지쳐서 좀 쉬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잠깐 쉰다는 게 10개월이나 쉬었지요.  쉬는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이 재충전을 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좀 쉬어가면서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시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더군요.  좋은 작품을 기획해서 작게나마 나만의 스튜디오를 만들어볼까 하는 구상도 해봤지만 그럴만한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생각을 바꿔봤습니다.  너무 미친듯이 올인하지 말고 즐기면서 일을 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봤습니다.  아무리 일도 좋지만 가족과의 시간도 중요하니까 되도록이면 집에서 가까운 곳에 회사를 다니고 싶었습니다.  종일 일하고 또 긴 퇴근시간에 지쳐서 집에 와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쓰러져 자는 그런 생활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중 지인으로부터 한 회사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그 회사에서는 애니메이터를 뽑는다고 하더군요.  기획이나 연출쪽이 아니라 애니메이터 평사원을 뽑는데 관심이 있냐고 묻길래 저는 좋다고 했습니다.  그 회사가 집에서 가까웠거든요!  애니메이션을 할 수만 있다면 직책은 상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락을 하고 포트폴리오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되었습니다.  애니메이팅 작업을 직접 해본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과, 새 회사에서는 마야를 사용하는데, 저는 10년 가까이 맥스만 사용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툴에 대한 적응 또한 걱정이었습니다.  애니메이터는 move와 rotation만 알면 된다고 하지만 사실상 프로세스에 지장이 없도록 하려면 툴을 충분히 익혀야하니까요.  입사 지원할 때 제출한 포트폴리오도 3년전 작업했던 결과물이었습니다.  애니메이터 지원이니까요.


얼마 후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면접 때, 그 자리에 계시던 분들이 비슷한 질문을 여러번 하셨는데 간단히 말하면 "감독까지 하시던 분이 평직원으로 일하실 수 있겠습니까?  손도 많이 굳었을텐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랬죠.

결국 입사를 하게 되었고, 그동안 굳어 있었던 머리와 손을 풀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처음 적응하기는 참 힘들었지만 무사히 살아남아서(^^) 어느덧 2개월째로 접어들었네요.  다시 애니메이터의 이름으로 첫 월급을 받을 때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애니메이터 평사원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저는 디즈니의 Nine oldmen을 생각했습니다.  늙을 때까지 오로지 애니메이터로서 존경을 받으며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  '나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 없지'라는 조금은 건방진 생각을 했습니다.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일종의 마인드컨트롤이었지요.  그리고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정말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과연 저 사람이 얼마나 잘 하나'하고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시선들 또한 느꼈기에 더 열심히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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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서론입니다.  사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습니다.
서론이 참 길었죠?

큰 이야기를 다루는 일에서부터, 그 이야기를 하나 하나의 컷들로 실현시켜 나아가는 연출을 하다가 다시 작업 프로세스의 제일 끄트머리에서 작업을 해보니 새삼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 느낀점을 하나씩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혼자서 생각하고 고민하기보다는 같이 공감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보면 더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줄이고 다음에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픽사를 롤모델로 오늘도 최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애니메이터 여러분, 힘 냅시다~!

 

2009.7.12

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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