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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3 몽타주 시퀀스(Montage Sequence) 16
 
 

픽사의 애니메이션 <Up>이 세상에 선보였을 때, 모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영화 초반부의 몽타주 시퀀스의 감동을 이야기 했다.  대사도 나레이션도 없이 잔잔한 음악을 따라 약 4분 정도의 영상이 흐르고, 잠시 Fade Out이 되었을 때, 관객들은 가슴이 먹먹하고 코끝이 찡한 감동을 맛보았다.  영화 평론가들도 그 장면을 두고,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 버금가는 훌륭한 몽타주 시퀀스라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몽타주 시퀀스"라는 말이 뭘까?
범죄자의 인상착의를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그린 그림을 몽타주라고 하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몽타주 시퀀스는 또 뭔가?
 
몽타주(Montage)라는 말은, 프랑스어 "Monter"에서 유래한 말인데 "모으다, 조합하다" 라는 뜻이다.  이것이 사진이나 영화에서는 이미지나 컷을 짜집기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영화 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몽타주 이론"이라는 대목을 접하게 된다.  영화를 체계적으로, 특히 연출에 대해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 하는 중요하고도 중요한 내용인데 아쉽게도 애니메이션만 공부하면 접하기 힘든 이론이다.  역사가 매우 오래 깊은 이론이지만 영상 언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는 아직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이론이다.  결코 죽은 이론이 아니라는 뜻이다.
 
◆ 몽타주 이론
몽타주 이론은 1920년대에 구소련의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genstein)"에 의해서 주창되고 발전된 이론인데, 영화의 컷들을 단순히 시간 순서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컷들을 조각내고 재조립함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쉽게 풀어서 쓰자면, 평범한 컷들이라도 앞 뒤에 어떤 컷들을 조합해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느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에이젠슈타인의 대표작 <전함 포템킨>(1925)
초기 몽타주 기법의 대명사인 '오뎃사 계단의 학살'장면
 
갑자기 웬 영화 이론?
골치 아픈 이론은 잠시 접어두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간단한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다음 4 개의 이미지를 보면, 캐릭터의 클로즈업 앞쪽에 각각 다른 장면을 붙였다.  캐릭터의 표정은 4 컷이 모두 똑같은 것이다.  하지만 앞에 어떤 장면이 있었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감정이 다르게 느껴진다.
 
"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야!"
"살다보니 별 우스운 광경을 다 보는군"
"위험해! 조금만 버텨!"
"이런... 큰일 났군"
 
아주 단순하고 기초적인 예를 들었기 때문에 약간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정지된 이미지가 아닌 일련의 영상으로 조합된 것으로 보게 된다면, 4 컷의 캐릭터 감정이 틀림없이 각각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컷과 컷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 초기 몽타주 이론의 기초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컷들을 재조합하고 충돌시켜 인위적으로 의미를 만든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 이후에 몽타주 이론은 논쟁 속에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많은 파생 이론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굳이 이론을 들먹이면서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위와 같은 식으로 편집을 하면 의미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결과가 아니냐, 그게 편집의 묘미가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타고난 감각이 있는 것이다.  몽타주 이론은 편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알고 있는 것과 창작 작업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하여튼, 똑같은 장면이라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니, 정말 흥분되지 않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몽타주 이론은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퇴색된 부분도 있고 더 복잡하게 발전된 부분도 있다.  그중 하나의 예가 바로 <Up>의 몽타주 시퀀스처럼 발전한 경우인데, 평범한 컷들을 충돌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존의 방법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하나의 장면에 함축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그런 장면들을 차례대로 나열해 보여줌으로서 기존의 일반적인 편집 기법으로는 느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감정을 전달하는 기법이다.
주로 긴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짧은 시간에 보여주고자 할 때 사용하는데, 하나의 사건이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일반적인 편집의 흐름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시(詩)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잘 사용하면 그 효과는 놀랍다.  밀도가 높은 화면들이 마치 그림책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동안에 관객은 영화 속 시간의 하루, 또는 일주일, 또는 일 년, 또는 <Up>의 경우처럼 주인공의 청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는 50년 이상의 시간을 단 몇 분의 시간 사이에 고스란히 체험하게 된다.
 
한 장면 안에 수십 년의 시간의 흐름을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능력.  그야말로 최고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한된 컷 안에 수십 년을 담아낸답시고 하나의 컷에 너무 많은 내용을 구겨 넣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관객은 아무 것도 읽을 수 없다.  하나의 장면에 하나의 이야기만 담되 그 한 장면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몽타주 시퀀스의 비밀이 되겠다.
 
그렇다면, 과연 <Up>은 어떤 구성으로 50년의 시간을 단 4분 안에 담았을까?
 
"주인공 칼(Carl)은 어린 시절 소꿉친구 엘리(Ellie)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탐험가 기질이 있는 두 사람은 언젠가는 남미의 파라다이스 폭포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 꿈이다.  비록 가난한 시작이었지만 신혼은 꿈처럼 달콤했고 두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각박한 현실은 꿈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노인이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있었던 꿈을 새삼 떠올린다.  뒤늦게나마 꿈을 이루어보려고 어려운 결심을 하지만 불행히도 칼은 배우자인 엘리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홀로 남는다".
 
그야말로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한 시간도 아니고 10분도 아니고 4분 안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었을까?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그 결과물은 한 장면 한 장면이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다.
가장 일상적인 장면들로 구성해서 관객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면서 그 장면이 담고 있는 의미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이해시키고 있다.  그렇게 관객은 주인공 칼과 함께 인생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진짜 영화가 시작될텐데 마치 긴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나른한 피로감까지 느껴지면서, 남은 시간이 부담스럽기까지 할 지경이다.
 
장면들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대표적인 몇 개의 장면들을 살펴보자.
 
1. 신혼(희망찬 시작)
비록 빈손으로 시작하는 신혼이지만 희망이 넘치는 분위기를 전해 주고 있다.  칼과 엘리는 결혼식 예복을 그대로 입고 있다.  실제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어차피 이미지 샷이다.  두 사람 모두 어서 빨리 행복한 나의 집을 만들고 싶어서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그 마음이 느껴진다.  낡은 집이지만 두 사람 모두 표정이 밝고, 창밖으로 환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서 밝은 앞날을 예견해주는 것 같다.  특히 엘리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톱질을 하는 모습이 그녀의 적극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성격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2. 직업(몽상가의 기질)
두 사람이 모두 꿈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한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릴 적부터 동물 관찰을 좋아하는 엘리는 동물원에서 일을 하고, 칼은 마치 꿈을 파는 풍선장수 같다.  "South America"라고 쓰인 벽의 글씨가 그들이 향하고자 하는 목적지를 대변해 준다.  둘 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을 것이라는 건 뻔 하지만, 서로 가까이 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어느 정도 몽상가 기질이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칼의 풍선은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를 담고 있다.
 
3. 좌절
아기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아기방을 꾸미는 장면으로 구성하였다.  벽에 그린 그림은 영화 본편에 앞서 보았던 "Partly Cloudy"를 살짝 차용하는 센스.  특히 칼이 만들고 있는 아기용 모빌은 하늘을 날고자 하는 칼의 내면세계를, 벽의 그림을 통해서는 동물을 좋아하는 엘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뜻한 대로만 풀리지 않는 법.  산부인과로 보이는 진료실에서 흐느끼는 엘리를 통해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앞 샷의 화려함과 대비해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두 사람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고 있다.
 
4. 새로운 희망
 어떤 고난도 파라다이스 폭포를 향한 두 사람의 꿈을 꺾을 수 없다.  벽난로 위의 장식을 통해서 두 사람이 서로의 꿈을 존중하고 있으며, 그 꿈이 얼마나 그들에게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꿈은 '파라다이스 폭포'라고 써 붙인 저금통으로 현실화 되어가기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느끼게 해준다.
 
5. 현실의 벽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계속 생기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삶이 생각처럼 녹녹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뜻하지 않은 지출이 생겨서 저금통을 깨는 상황을 통해서 현실을 헤쳐 나아가기 위해서는 잠시 꿈을 접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6. 계속되는 일상
넥타이의 변천사(?)를 통해서 세월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최고의 센스!  굳이 커다란 스케일로 세월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까지 느낄 수 있다.
 
7. 노년
인생의 황혼.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통해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노을빛 조명, 조금 밖에 남지 않은 촛불을 통해서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8. 잊었던 꿈
어느 날 문득, 잊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꿈을 되새기는 장면.  집안 청소를 하는 상황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주고 있다.  엘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칼의 표정은 미안함과 고마움의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나를 만나 고생만 하고 이렇게 늙어 버렸구나"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9.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엘리와 함께 늦게나마 꿈을 이루어 보려는 소망을, 남미로 가는 항공권을 구입해서 소풍 바구니에 담아 엘리에게 깜짝 선물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담아냈다.  특히 저녁노을 가득한 언덕 장면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앞서서 젊은 날의 장면에서 똑 같은 장소가 나오는데, 그 때는 엘리가 먼저 언덕에 올라가서 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엘리가 기력이 없어서 뒤쳐졌다.  엘리의 뒤쪽으로 해가 막 지기 시작하는 장면이 마치 꺼져가는 엘리의 생명처럼 느껴진다.  엘리가 힘 없이 주저앉자 칼이 당황해서 뛰어 내려가고, 이때 모자가 벗겨지는데 그 순간 뭔가 일이 잘 못 되었다는 느낌이 가슴을 때린다.  작은 디테일에 많은 얘기를 담는 멋진 장면이다.
 
10. 이별
 
11. 홀로 남은 칼
이 시퀀스의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리는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진다.  결혼식을 했던 그 교회의 같은 장소.  환호성도, 축하도 없이 텅 빈 교회에 홀로 앉아 있는 칼.  바로 앞의 병실 장면에서 바로 이 장면이 나오면서 혹시 엘리가 회복되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다.  어두운 교회의 분위기가 마치 장례식을 막 마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대표적인 몇 개의 장면들만 봐도 얼마나 세심하게 다듬어지고 연출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각적인 기억을 관객의 머릿속에 남기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을 관객의 가슴속에 남기도록 구성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모든 장면들이 최소 100 :1의 경쟁률을 뚫고 선택된 것들이라고 단언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되 억지스럽거나 과도하지 않게,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안한 장면들을 통해서 전달하는 섬세함.  정말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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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히는 경험을 한다.  특히 연출에 대한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공부를 하고 싶어도 어디서 어떤 것을 보고 배워야 할지 막막해 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 정보가 널려있다고 하지만 어떤 것이 정말 필요한 자료인지 가려내기도 힘들다.  그럴 땐 영화 쪽으로 시선을 돌리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당장 서점에만 가도 영화와 관련된 이론 서적은 넘친다.  어차피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는 마찬가지다.  표현 도구가 다를 뿐이다.
 
물고기를 잡아다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격언이 있다.
애니메이션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좋은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것이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것이라면, 애니메이션의 기초와 툴을 가르치는 것은 낚시질과 그물질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남이 만들어 놓은 낚싯대와 그물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조금 시선을 돌려서 영화 이론부터 체계적으로 공부를 한다면 자신에게 맞는 나만의 낚싯대와 그물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몽타주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새삼 드는 생각이었다.
 
*몽타주 시퀀스에 관한 또 다른 글 : http://bellstone.tistory.com/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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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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