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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1 완벽을 위한 불완전 11
작년에 영화 <스타트렉 : 더 비기닝(Star Trek)>을 보면서 영화 촬영 기법의 새로운 흐름을 목격했다.  특별히 기법이라고까지 할 것도 없는데, 공들여 만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바로 "렌즈 플레어(Lens Flares)" 현상이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사진이나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인데 내가 놀란 것은, 촬영 감독이나 조명 감독들이 기피했던 이런 현상을 자연스러움을 넘어 과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거의 모든 컷에서 빛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간섭한다.  위에 보이는 컷들은 애교처럼 보일 정도로 어떤 컷은 화면의 절반 이상이 날아갈 정도로 하얗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처음에는 좀 거슬렸던 빛들이 조금 지나자 내가 미래 세계에 함께 하고 있다는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렌즈 플레어 현상은 광원이 렌즈를 통과하면서 생기는 굴절과 반사의 복합적인 현상인데, 요즘에는 특수한 목적에 의해서 일부러 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영화 촬영에 있어서는 기피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포토샵의 Lens Flare 효과

관객들이 영화 속 이야기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필요하다.  그런데 화면에 느닷없이 렌즈 플레어 현상이 나타나면 관객들은 순간적으로 "아, 이것은 카메라로 촬영한 화면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야기에서 튕겨져 나오게 된다.  내가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렌즈를 통해서 본다는 느낌 때문에 갑자기 거리감이 생기고 영화에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 제작자들의 오래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상 기기의 발달로 인해서 휴대용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고 그에 따라 개인들이 만들어낸 영상물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특히 각종 사건 사고 현장에서 촬영된, 화질은 조악하지만 현장감 넘치는 화면들을 TV와 인터넷을 통해서 빈번하게 접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화면 흔들림이나 과도한 빛의 노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화에서도 그런 관객들의 심리를 역이용해서 리얼리티를 살리는데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이제는 관객들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깔끔한 화면보다는 조금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화면에서 더욱 현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래는 영화의 일부분이다.  빛의 향연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SF라는 비현실적인 이야기.  어차피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누군가 정말로 현장에서 카메라에 담아 온 것처럼 현장감 넘치는 화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영화 속 이야기의 리얼리티에 빠져들게 된다.  아마도 감독이 의도한 것은 바로 그 점일 것이다.

과거에는 기피했던 영화 제작상의 단점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장점으로 부각된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런 예는 애니메이션에도 있다.
픽사의 2008년 작품 <월-E(WALL-E)>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감독인 앤드류 스탠튼(Andrew Stanton)은 작품의 비쥬얼을 실사처럼 보이기를 원해서 조명과 렌즈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스타워즈(Star Wars)>,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2001:Space Odyssey)>, <클로스 인카운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같은 고전 SF 영화의 클래식한 느낌을 담아내고 싶어 했는데, 이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는 와이드 스크린 상영을 위해서 아나모픽 렌즈(Anamorphic Lens)를 이용해 촬영했다는 것이다.
아나모픽은, 폭이 좁은 필름에 와이드 스크린 화면을 담아내기 위해 특수한 렌즈를 통해서 이미지를 광학적으로 압축하는 기술인데, 픽셀로 저장되는 디지털 이미지와는 달리 광학적으로 압축되어 필름에 담겨진 이미지는 나중에 반대의 과정으로 렌즈를 통과시켜 원래의 크기로 폭을 넓혀도 이미지의 손상이 거의 없는 특성을 지닌다.

아나모픽 렌즈를 이용해 촬영을 하면 넓은 화면을 폭이 좁은 필름에 담아낼 수 있다


아나모픽 렌즈


그런데, 아나모픽 렌즈를 이용해서 촬영하면 특이한 현상이 하나 생기는데, 바로 초점에서 벗어난 뒤쪽의 피사체가 수직으로 길게 늘어나는 현상이다.

초점을 벗어난 배경의 불빛이 상하로 길게 타원형으로 왜곡되었다


영화 제작자의 입장에는 이미지가 왜곡되는 이 문제를 너무나 해결하고 싶어 했지만, <월-E>에서는 고전적인 영화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일부러 이 현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원래 CG 카메라에서는 생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수정 등의 기술적인 수고가 필요했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고생은 헛되지 않아서, 그 결과물은 마치 진짜 현장에서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 온 것처럼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초점을 벗어난 배경 이미지가 왜곡되는 아나모픽 렌즈의 특성을 그대로 살렸다


기술이 발달한 만큼 어쩌면 더 세련된 화면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린 낡은 기술까지 (힘들게) 되살리는 수고를 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고생한 만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그 차이가 미미하다면 굳이 힘든 길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미미한 차이가 어쩌면 내가 원하는 길로 가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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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E>의 아나모픽 렌즈에 대한 내용은 DVD의 서플먼트 디스크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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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보완 내용

1. <월-E>에서 사용된 아나모픽 렌즈의 이미지 왜곡 현상은 순전히 프로그램 상에서 구현된 것입니다.

2. 영화 <스타트렉:더 비기닝>에서의 렌즈 플레어 효과는 철저한 감독의 의도였고, 실제로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 렌즈를 향해서 측면에서 빛을 쏘아서 효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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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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