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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의 성난 사람들(1957)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와 함께 법정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이 영화는, 관객을 또 한 명의 배심원으로 그 자리에 함께하는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IMDB(The Internet Movie Database)에서 역대 영화 Top10 을 줄곧 고수하고 있는 사실이 영화의 작품성과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을 제외한 나머지 러닝타임 내내 하나의 방 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선풍기조차 돌아가지 않는 푹푹 찌는 열기와, 12명 배심원들의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작은 방은 그야말로 용광로 같다.

이 영화를 보며 정말 놀란 것은, 90분 내내 쉼표 없이 이어지는 12명의 심리를 잡아내는 카메라다.  제한된 공간에서 컷을 이어가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것도 12명이라는 많은 인물의 대화를 90분 내내 매끄럽게 이어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방식으로든 컷을 구성해 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12명 전체를 잡아내는 와이드샷부터 단독 클로즈업 샷까지를 아우르면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물 흐르듯 컷을 이어간다.

법정을 소개하는 짧은 오프닝 직후에 영화의 타이틀 크레딧과 함께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되는데, 배심원실로 들어서는 그 첫 장면부터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문이 열리면서부터 자그마치 6분 10초에 이르는 롱테이크로 담아낸 배심원실의 첫 장면은, 그 후로 이어질 끝없는 토론의 홍수를 예견함과 동시에 관객을 또 한 명의 배심원으로서 그 방에 초대하는 멋진 장면이다.

이런 장면을 여러개의 컷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롱테이크로 가게 되면 어떤 한 인물에만 집중하든지 아니면 전체를 아우르든지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12명의 배심원들을 골고루 다 잡아내고 있다.  카메라가 들어가고 나오는 움직임에 따라서 인물들이 프래임에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과정을 보면 마치 아름다운 안무를 보는 것 같다.  보고 있으면 황홀할 지경이다.

12명의 배심원들은 피고가 유죄나 무죄냐를 만장일치의 평결로서 합의를 이루어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는데, 11명이 유죄라고 주장하는 와중에 공교롭게도 단 한 명이 무죄를 주장하고 나선다.


얼른 평결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왜 무죄라고 생각하느냐를 들어보기 보다는 왜 유죄인지 설득하는 것이 빠르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각자 자기의 주장을 펼쳐 놓는다.  하지만 모두들 예상하셨겠지만, 11:1의 일방적인 싸움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12명이 만장일치의 평결을 이루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 방에서 나갈 수도 없다.

하나의 장소에서 90분을 꽉 채우는 이야기.  잠시의 쉼표도 없이 실제의 시간과 동일하게 흘러가는 영화속의 시간.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리시길...
어쨌든 영화는 마지막에는 12명 만장일치의 평결을 이루어 낸다.  유죄일까 무죄일까?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은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바란다.

영화의 카메라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180도의 법칙(180 Degree Rule)"이라는 것이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accad.osu.edu/~midori/Materials/camera.html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화면의 좌.우로 배치했을 때,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각 인물을 다른 각도로 잡아서 편집할 때 두 인물을 가로지르는 가상의 선을 넘어가서 그 반대편에서 촬영하면 관객이 공간적인 혼란을 일으킨다.  아주 중요하면서도 기초중의 기초에 속하는 기법인데, 이 영화에서처럼 탁자를 중심으로 12명이나 되는 인물이 둘러 앉아 있으면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어떤 방법으로 촬영하고 편집해야 할까?  이런 경우 180도의 법칙은 지켜질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관객에게 혼동을 주면 안된다.  그래서 한정된 공간에서의 영화 구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면에서 배운 것이 많지만 특히 클로즈업 샷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1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대사를 주고 받는데 뜻밖에도 단독 클로즈업 샷이 그다지 많이 안 나온다.  대사하는 인물을 잡아내는 가장 쉬운 방법인데 얼마나 쓰고 싶었을까.  하지만 절제해서 사용하는 만큼 그 효과는 아주 대단하다.


현란한 카메라 워크도 없고, 관객을 놀래키려고 숨겨두었다가 터뜨리는 음모도 없다.  그렇다고 무죄를 주장하는 단 한 명의 배심원이 피고인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우직하리만치 정직하다.  마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가듯 서두름 없이 탄탄한 구조를 완성해 간다.
영상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배울점이 많은 영화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잊고 영화의 내용에 푹 빠져서 한 번 즐겨보시기를 추천한다.  특히, 요즘처럼 푹푹 찌는 여름 밤에 감상하면 배심원실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그 느낌이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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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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