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9.21 3 프레임짜리 컷? 13

앞서 포스팅 했던 "몽타주 시퀀스"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영화의 편집 기술은 시대에 따라서 발전을 거듭하면서 계속 새로운 기법이 시도되고 있다.  예전에는 필름을 자르고 붙이는 까다로운 방법으로 편집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촬영된 소스부터 디지털화 되어 컷을 자르고 붙이는 과정이 너무나도 손쉬워지면서 편집의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20 세기가 저물어 가던 1999년.  한 편의 영화가 세상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하였으니 바로 <매트릭스(The Matrix)>다.  나 역시 종로의 서울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세상이 달리 보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야말로 심봉사가 눈을 번쩍 뜬 기분이었다.

<매트릭스> 하면 총알을 피하는 그 유명한 "Bullet-Time" 시퀀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야말로 영화 편집의 기술을 한꺼번에 몇 단계 진보시킨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매트릭스>가 영상 매체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편집은 새로운 유행을 낳았다.  특히, 하나의 장면, 하나의 동작을 여러 각도로 촬영해서 짧은 프래임들로 재구성하는 감각적인 스타일의 편집은 영화가 나온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유행이 식을 줄을 모른다.
다음 장면을 보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점프-발차기-착지의 동작이 4개의 다른 컷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적인 속도와 슬로우 모션이 리듬감 있게 편집되어 하나의 동작을 구성하는데, 이런 편집에서 관객들은 컷의 숫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화려하고 짜릿한 하나의 발차기 동작으로만 뇌리에 남을 뿐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도 과연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물론 총알을 피하는 장면은 애니메이션 포트폴리오에서 아주 지겹도록 보아야만 했다.  나중에는 그런 비슷한 장면만 나와도 짜증부터 날 지경이었다.  그런 것 말고, 짧고 빠른 컷을 감각적으로 재배치해서 새로운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기법을 애니메이션에서도 시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놀랍게도 2004년, 픽사의 6번째 장편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에서 나는 보고야 말았다.


컷이 몇 개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그리고 짧은 컷이 몇 프레임짜리인지 알면 두 번 놀랄 것이다.  중간 부분만 잘라서 느린 속도로 만들어 봤다.


2초 남짓한 위 장면은 총 7개의 컷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짧은 컷은 3 프레임이고, 가장 긴 컷도 8 프레임밖에는 안 된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애니메이션 감독이 3 프레임짜리 컷을 사용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  3 프레임이면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빡 하는 순간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3 프레임짜리 컷이라고 해도 다른 컷과 똑 같은 공을 들여야 하는데...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위에서 예를 든 <매트릭스>와 <인크레더블>의 편집 방법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매트릭스>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가상의 공간에서 시간의 개념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컨셉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하나의 동작도 컷에 따라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유연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반면에 <인크레더블>의 경우에는 빠르게 달리는 캐릭터의 속도에 맞춰서 편집 역시 빠르고 톡톡 튄다.
<매트릭스>의 편집이 물 흐르듯 매끄러운 동작을 중심축으로 해서 캐릭터의 능력을 돋보이게 했다면, <인크레더블>의 편집은 컷과 컷을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캐릭터의 응축된 에너지를 표현했다.

여기서 잠깐, 먼저 다루었던 몽타주 기법을 대입해 보자.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기법도 컷과 컷을 충돌시켜 각 각의 컷이 가진 이미지가 아닌 제 3의 새로운 느낌을 만든다는 의미에서는 비슷한 것 같지만,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는 하나의 컷을 여러개로 조각내어 다른 컷들 사이 사이에 배치함으로서 컷의 충돌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위에서 예를 든 장면들은 하나의 동작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컷들로 재배치하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게 몽타주 이론은 편집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계속 진화해 가고 있다.

영상 언어에 대한 이해와 기초만 탄탄하다면 애니메이션으로도 새로운 유행을 만들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 영화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애니메이션에서 배우는 그런 유행을...


참고로, <인크레더블>의 브레드 버드 감독은 탐 크루즈 주연의 영화 <미션 임파서블 4>의 감독으로 확정되어 있다(2011년 12월 개봉 예정).  놀라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

* 추가 보완

몽타주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의 오뎃사 계단 장면을 이야기 했는데, 도대체 어떤 장면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해당 장면을 추가한다.  무성영화 시대의 영화라 여러 면에서 촌스러운 느낌이 나지만 적어도 편집에 있어서는 요즘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당시로서는 하나의 컷을 여러개로 조각내어 다른 컷들 사이에 배치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라울 뿐 아니라 그 시각적 결과물이 던져주는 느낌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
*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이글은 스크랩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오직 링크로만 연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김종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