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또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을 하기도 전에 내가 모르는 어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오늘날 직업 전선에 몸바치고 있는 수 많은 아버지들, 어머니들.
냉장고에 항상 탄산음료가 하나 정도는 있는데, 주로 칠성사이다를 마신다.
색소가 안 들어가 있어서 사이다를 마시는데, 탄산음료가 건강에는 좋지 않다고 해도 가끔 땡길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얼마전부터 이놈의 사이다 뚜껑을 따기가 힘들어졌다. 힘을 주어 돌려도 손 안에서 헛돌기 일쑤다. 나중에는 짜증까지 난다.
살펴봤더니, 손에 잘 안 잡히는 이유가 있었다.
뚜껑의 높이가 좀 낮아졌다.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 속사정을 나는 알 수가 없다.
용기의 형태가 바뀌는 일이기 때문에 생산라인의 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비용이 드는 일인데 왜 했을까?
추측만 할 수 있는 내 입장에서는, 기업이란 수익 창출이 목적이기 때문에 결국 비용 절감을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산라인을 바꾸는 비용이 들긴 하지만 차후에 지속적으로는 원가 절감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했으리라고 추측한 것이다.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이렇게 불편하게 바뀌지는 않았을터이므로...
이것이 기업에게 도움이 될지 안될지 난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적어도 나는), 칠성사이다를 선택하는데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주저할 것이다. 굳이 이 녀석이 아니더라도 탄산음료의 종류는 넘친다. 탄산음료 진열대 앞에 섰을 때, 칠성사이다의 뚜껑을 따다가 짜증이 났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고, 그 짜증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칠성사이다를 마셔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을 것이고, 그러면 선택은 다른 제품이 될 것이다.
나와 같은 소비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결국 기업에는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한 번 돌아선 소비자의 마음을 다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뚜껑의 높이가 달라졌다는 이유 때문에 기업이 망하지는 않겠지만, 하여튼 나중에 나중에 이 뚜껑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건너고 있다.
지치고 목이 마른다.
하지만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계속 갈 것을 재촉한다. 사막 끝에 도달하면 오아시스를 주겠다고 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 순간의 물 한 모금이다. 나중에 오아시스가 아니라...
장편이든 TV시리즈든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수 년이 걸린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지치지 않고 오래 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치지 않으려면 무리해서는 안된다. 필요할 때 쉬어 가면서 일을 해야 끝까지 갈 수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장거리를 마치 단거리처럼 헐떡거리며 뛰어 간다. 사람들이 지쳐 나가 떨어져도 계속 달린다. 쉬지 않고 달린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기왕이면 즐겁게 달렸으면 좋겠다.
오아시스까지 사람들을 끌고 도착했다고 해도 그들은 그 오아시스의 물을 다 마실 수는 없다. 기껏 해야 몇 모금이 전부다. 게다가 그들은 지치고 병들었다. 수많은 낙오자도 생겼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손해는, 그 사람들이 다시는 그 지도자를 따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사막을 건너는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