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일하게 본방을 사수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일요일 저녁에 하는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이다.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TV만 켜면 온통 비슷한 아류 프로그램들이 넘칠 정도로 이미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다. 가수들끼리 경쟁을 시키고 순위를 매긴다는 방식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는 가수들에겐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무대이며, 일반인들에게는 청중평가단으로 참여해서 공연을 보는 것이 꿈이 되었을 정도로 특별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데뷔 십 수년 차의 노장들도 그 무대에 서면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덜덜 떠는 모습을 보면, 가수들도 그 무대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며 그만큼 공연에 부담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가수라는 자존심을 걸고 단 한 번의 공연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하니 오죽하겠는가.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참가자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그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많은 시도를 하게 된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가수들의 새로운 모습. 사실 "나가수"를 보는 재미가 거기에 있다.
어느 분야든 새로운 시도에는 당연히 문제가 뒤따르기 마련인데, 내가 "나가수"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새로운 시도와 그에 따르는 문제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
새로운 도전 vs. 위기 최소화
음악 공연이든 영화든, 기본적으로 관객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한다. 그런 관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이전까지 해왔던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도전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 시점에서 사람들은 두 갈래의 선택을 하게 된다.
첫 번째는, 위기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이다. 안전한 길이라 함은 당연히 그전에 해 봤던 것을 답습하는 것이다. 경험해 본 길이기 때문에 안전하고 쉽다. 하지만 새롭지 않기 때문에 차별화 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는, 위기를 감수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도전하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보장이 없고 그만큼 어려움도 따른다. 하지만 뭔가 새롭다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길이다.
창의적인 마인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위기를 최소화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이미 실패나 다름 없다고 본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위기를 피해가려고 안전한 길만 선택하다 보면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결과물들을 다시 베끼거나 다른 사람들의 것을 흉내 내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우리 눈에 익숙해서 특별히 모나지도 않고, 작업의 속도 또한 빠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방법처럼 보일 수도 있다(실제로 많은 클라이언트들의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야 어디 창작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일을 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하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 제한된 자금과 짧은 스케쥴이 그것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그런 핑계를 댈 것인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무슨 일이든 넉넉한 자금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는 결코 없다. 어차피 기다려도 오지 않을 기회라면,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길이다.
자기 능력의 한계
지난주(7월24일) "나가수" 프로그램에서 김범수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자신의 스타일과는 완전히 다른 일렉트릭 사운드를 시도하면서 "공연 직전까지도 너무 문제가 많아서 울고 싶었다" 라고 심정을 털어 놓았다. 심지어 자칫 잘 못 했다가는 가수 생활의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까지도 했다는 걸 보면 그의 도전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문제들을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했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목표를 어떻게든 이루어 내기 위해 그 모든 스트레스를 이겨낸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 창작자의 모습이 아닐까? 그는 그 공연으로 또 한 번 자신의 한계치를 뛰어넘었고, 그 결과는 관객들의 선택으로 입증이 되었다.
스스로의 한계는 스스로가 만드는 것 같다. 나 스스로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선언하는 순간 바로 그 곳이 내 한계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창작의 부담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세상에 이미 널려 있는 클리셰들을 피해가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며, 과연 이 세상에 순수한 창작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나태해지려는 자신과도 끝없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 싸움에 굴복하는 순간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지어버리는 것이 된다. 창작에 있어 한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일 누군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문제를 환영하라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이 너무 수월하게 일이 풀린다면 오히려 그게 문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데 걸림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걸림돌들을 치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창작의 과정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야 말로 내 실력을 증명하는 길이며,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과거의 방법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야 말로 창작자로서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창작자인가?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하자.
스토리를 만들 때, 정해진 규칙대로만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면 당신은 이미 정체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을 할 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양이 나온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베끼고 있는 중이다. 애니메이션을 할 때, 액팅이 지루하고 뻔 하다면 그 역시 그동안 해 왔던 방식을 기계적으로 답습하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작품에서 본 것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경쟁자들과의 승부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도전의 끈을 놓고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순간 당신은 바로 탈락의 쓴 잔을 손에 들게 될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증명하려면 바로 지금 모니터에 띄워놓고 작업 중인 그 씬들을 통해서 해야 한다. 나를 기다리는 좋은 작품이란 애초부터 없다. 온갖 문제들 투성이인 지금 그 프로젝트 안에서 그 문제들에 굴복하거나 피해가지 말고 조금이라도 새로운 방법을 찾아 해결하려고 노력하자.
그것이 "나는 창작자다" 라고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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