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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터와 연출>

 

애니메이터에게 연출 능력은 얼마나 필요할까요?  또 작품의 연출에 얼마나 관여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알고 있는 애니메이터들은 모두 연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감독으로 데뷔할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유독 애니메이터가 연출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실제로 현역 감독들 중에 애니메이터 출신이 많은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애니메이션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영상 언어입니다. 스토리를 영상으로 시각화하여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한 편의 작품은 초 단위의 수백개 컷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한 컷 한 컷은 일반적으로 캐릭터를 중심으로 구성 됩니다.  한 장면은 이미 만들어진 콘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데, 애니메이션 작업 과정에서 때로는 캐릭터가 연기하는 동선에 따라서 카메라의 세팅에 변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맡은 사람이 애니메이터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 다양한 액팅에 따라 그 변화를 주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 그 샷을 맡은 애니메이터는 연출자(감독)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적절한 방법을 조율하게 됩니다.  감독이 쓸데없이 자존심을 내세우며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아닌 이상 더 좋은 샷을 만들겠다는데 반대할리 없겠지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라고 해도 콘티만으로 최종 결과물을 100%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2차원의 그림이 레이아웃 단계에서 실제 영상으로 구현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기대 이상의 멋진 샷이 구성되기도 하면서 수많은 변화를 거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레이아웃 파트를 따로 두지 않고 애니메이션 팀에서 맡는 게 일반적입니다.  제가 겪어본 바로는 레이아웃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작업하는 회사를 아직은 못 봤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하지만 애니메이터의 입장에서는 콘티를 받아들고 컷과 컷들이 매끄럽게 연결되도록 만드는 1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건 부담이면서 한편 행운입니다.  작품 연출의 일부분을 맡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다시 말해 애니메이터들은 자의든 타의든 연출 능력을 요구받고 있는 샘입니다.

 

콘티를 기준으로 배경과 캐릭터를 세팅해서 연기의 동선을 만드는 과정이 레이아웃 단계인데, 이렇게 컷과 컷을 만들어 연결시켜보는 최초의 행위(?)가 애니메이터에게 주어진다니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입니까.  실무에서 씬을 분배할 때, 연결되는 몇 개의 컷을 통째로 나누어 가지는 게 일반적입니다.  당연히 자기가 만든 컷을 이어서 붙여보게 되겠지요.  그런데, 콘티상에서는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실제로 만들어 붙여보니 컷과 컷 사이가 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사소해 보이는 그 느낌은 알고 보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게 모르게 연출자로서의 눈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드리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영화는 컷과 컷이 모여서 전체 작품을 이룹니다.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컷들을 효과적으로 구성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연출의 가장 기본입니다.  영상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판단 된다면 컷과 컷이 왜 튀는지를 정확히 알고 그걸 능동적으로 수정하기 위해서는 영상 언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작업 과정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레이아웃을 만들어가면서 컷의 매끄러운 흐름을 위해 수정이 필요할 경우, 실제 그 컷을 맡고 있는 애니메이터는 감독과 밀접하게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컷을 다듬어 갑니다.  당연히 감독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아지게 되겠지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캐릭터를 화면의 왼쪽으로 조금 옮겨서 배치하라"는 지시가 있을 경우 애니메이터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왜 그래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감독의 입장에서도 같은 수정사항이 더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니메이터를 이해시키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애니메니터와 감독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연출적인 마인드를 공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캐릭터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쪽으로 화면의 공간을 더 주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애니메이터의 이해를 돕게 되는데,  바로 이런 내용 하나 하나가 바로 영상 언어를 습득하는 연출 공부입니다.  애니메이터가 연출 능력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위의 예처럼, 일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배워나가면서 연출자로서 능력을 키워 나아가기도 하지만, 이미 연출자로서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파트가 애니메이션 파트이기 때문에 애니메이터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연출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애니메이터들은 특별하게 일의 특성상 필요에 의해서, 또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연출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연출을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방법을 알려줄만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연출을 익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스토리보드를 그려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 언어라는 것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시각화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하나 하나의 장면으로 그려서 연결시키다보면 뭔가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것을 채워나아가는 과정이 연출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여튼 무엇이든지간에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군요. ^^

 

지금 우리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상황에 따라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단점이 있으면 분명 장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가지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힘들 때가 많지만 그만큼 다방면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지요.  위의 예처럼 연출부분이 그렇습니다.  나중에 정말로 연출을 맡을 기회가 왔을 때 확 잡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공부합시다.

 

여담입니다만, 제 회사 동료중에 라이팅 파트에서 일하다가 애니메이터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실력이 정말 출중합니다.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기초를 배우고 시작한 애니메이터보다 뛰어납니다.  그 사실을 처음 알고는 순간 제가 좌절할 정도였으니까요.  '누구는 죽어라고 한 우물만 파도 될까 말까한데... 천재로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마 다재다능한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겁니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 보면서 세상에 저절로 되는 건 없다는 걸 실감합니다.  천재는 99%가 노력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진짜 열심히 작업하거든요.  그러니 결과물이 좋을 수밖에요.  게다가 가만 보면 연출자의 눈도 갖고 있습니다.  어쩌면, 라이팅을 하다가 애니메이터가 된 것처럼 어느 순간 감독으로 깜짝 데뷔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바로 옆의 동료와 친해집시다.  미래의 감독들입니다. ^^

 

2009.7.30

Posted by 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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